1. 같은 방, 같은 형상, 160년
백악관 2층 동쪽 끝에 있는 한 침실은 흔히 “링컨 침실”이라 불린다. 정작 에이브러햄 링컨이 침실로 사용한 적은 없으며 그가 집무실이자 회의실로 썼던 공간이지만, 그가 사망한 후 그의 시신이 며칠간 안치된 동쪽 방과 함께 이 공간은 백악관에서 가장 짙은 정서적 무게를 지닌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시작된 한 형상의 목격담은 160년 동안 이어졌다. 키가 크고 마른 남자, 검은 프록코트, 창가에 서서 바깥을 응시하는 자세. 영국 총리도, 네덜란드 여왕도, 미국 영부인도, 백악관 직원도 모두 같은 모습을 묘사했다.

2. 1865년 4월의 결정적 사흘
이야기의 출발점은 1865년 4월이다. 4월 14일 밤 워싱턴 D.C.의 포드 극장에서 링컨은 존 윌크스 부스가 쏜 총에 머리를 맞았다. 그는 이튿날 아침 사망했고, 시신은 백악관 동쪽 방으로 옮겨져 약 사흘간 일반 조문 절차를 거쳤다. 흥미로운 점은 그 사건의 약 사흘 전, 링컨이 부인 메리 토드 링컨에게 자신의 꿈을 자세히 털어놓았다는 사실이다. 꿈속에서 그는 백악관 동쪽 방을 거닐었고, 그곳에 한 시신이 안치되어 있었으며, 곁에 모인 사람들이 “대통령이 암살자에게 살해당했다”고 울고 있었다는 것이다. 링컨은 그 꿈을 1865년 4월 11일자 일기에 적었다. 사흘 뒤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이 일화는 이후 모든 백악관 유령담의 출발점으로 자리 잡았다.
3. 빌헬미나 여왕의 새벽 한 시
공식 기록으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외국 정상의 목격담은 1942년 겨울이다. 나치 독일을 피해 망명 중이던 네덜란드의 빌헬미나 여왕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초청으로 백악관 2층 링컨 침실에서 묵었다. 그날 새벽 한 시 무렵, 여왕은 누군가 침실 문을 부드럽게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가운을 걸치고 문을 열자, 키가 크고 마른 한 남자가 검은 프록코트를 입고 문 앞에 서 있었다. 여왕은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다음 날 아침 식사 자리에서 그가 자초지종을 보고하자, 루스벨트는 한참 침묵하다 짧게 답했다. “그 방의 손님은 가끔 인사를 합니다.”

4. 처칠이 욕실에서 마주친 그 남자
같은 시기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도 백악관을 자주 방문했다. 처칠은 깊은 밤 욕조에 몸을 담그며 시가를 피우는 습관으로 유명했다. 그날 밤 그는 김이 자욱한 욕실에서 욕조에 한참 머문 후 시가를 입에 물고 알몸으로 침실로 들어섰다. 그 순간 그는 벽난로 옆에 한 남자가 서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처칠은 잠시 멈춰 시가를 한 모금 들이켜고는 이렇게 인사했다고 한다. “안녕하시오 대통령, 보다시피 저는 좀 불리한 모양으로 만났군요.” 형상은 옅은 미소를 짓고 천천히 사라졌다. 그날 이후 처칠은 백악관 방문 때마다 그 침실에 머무는 것을 거부했다고 측근들은 회고한다.

5. 백악관 직원 30건의 누적 보고
유명인의 증언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백악관 역사학회가 자료실에서 정리한 바에 따르면, 백악관 직원들이 시기를 달리해 보고한 유사 목격담은 약 30건에 이른다. 최초의 직원 보고는 1903년이었다. 청소부 메리 에반스는 진공청소기를 끌고 2층 복도를 청소하다 멀리 복도 끝에 키 큰 마른 남자가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고 진술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시기의 한 집사장은 사적 일지에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같은 형상이 나타난다”고 기록했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한 비서는 그 방을 정리하다 자신을 응시하는 한 마른 남자와 눈이 마주친 후 일주일간 출근하지 못했다.

6. 트루먼과 아이젠하워 영부인의 증언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딸 매기 트루먼은 1946년 자신의 일기에 “링컨의 유령이 백악관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적었다. 그는 한밤중 자신의 침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에 깨어 문을 열었지만 복도는 비어 있었고, 곧 같은 노크가 다시 들렸다는 경험을 적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부인 매미 아이젠하워는 같은 방에서 묵는 동안 차가운 손이 자신의 어깨를 짚는 듯한 감각을 여러 차례 보고했다. 매미는 그 후 다시는 그 방에서 자지 않았다. 시기와 인물이 모두 다른 두 영부인의 진술이 세부 사항에서 일치한다는 사실은 학계에서도 종종 지적되는 부분이다.

7. 레이건 부부의 1980년대 보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부부 시기에도 같은 형상에 대한 보고는 이어졌다. 레이건의 딸 모린과 사위 데니스 레비는 어느 해 백악관에서 묵던 새벽, 침대 발치에 한 남자의 실루엣이 서 있는 모습을 함께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두 사람의 증언은 키가 크고 마른 남자, 검은 프록코트, 슬픈 표정이라는 동일한 묘사로 일치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동물 반응이다. 레이건 대통령의 반려견 렉스는 그 침실에 들어가지 않으려 평생 거부했다는 기록이 있다. 백악관 관계자는 “동물은 사람보다 먼저 본다”고만 답했다.

8. 백악관 역사학회의 공식 자료
백악관 역사학회는 1961년 재클린 케네디 여사의 주도로 설립되었다. 학회는 백악관과 관련된 모든 역사적 기록을 보존하는 비영리 기관이며, 그 자료에는 직원 목격담과 외국 정상의 진술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학회의 분석에 따르면 30건의 보고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모든 진술이 동일한 외양, 동일한 자세, 동일한 분위기를 묘사했다는 점이다. 누군가 이전의 증언을 모방했을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1903년 청소부의 진술과 1942년 여왕의 진술 사이에는 상호 접점이 없었다. 두 사람이 동일한 형상을 묘사한 것은 우연이 아니거나, 혹은 모두가 같은 무엇인가에 영향을 받았다는 의미일 수밖에 없다.

9. 회의주의적 해석
물론 모든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일부 심리학자들은 이 모든 보고가 “기대 효과”와 “문화적 학습”의 결과라고 본다. 사람들은 백악관에 머물기 전 이미 링컨의 사망과 그 후의 유령담을 알고 있으며, 그 방에 들어가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같은 경험을 재현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해석이다. 또 다른 일부 학자들은 백악관 자체의 음향적 특성, 가령 오래된 목재의 수축과 팽창에서 오는 소리가 새벽 시간대 침실 문 노크처럼 들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시각적 형상에 대한 해석은 여전히 어렵다. 환각이라 보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같은 모습을 보았고, 진실이라 단언하기에는 결정적 증거가 부족하다.

10. 오늘도 닫혀 있는 그 방
링컨 침실은 오늘날 백악관 공식 투어 코스에서 제외되어 있다. 외국 정상과 특별 손님만이 그 방에서 묵을 수 있으며, 그 손님 중 일부는 다음 날 새벽 다른 방으로 옮겨달라고 조용히 요청한다고 한다. 백악관 관리 부서는 그 사유에 대해 “개인 사유”라고만 답한다. 1865년 4월의 그 사흘 이후, 그 방의 침대는 한 번도 진정으로 비어 있던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

11. 만약 당신이 그 방에 묵게 된다면

160년의 시간 동안 같은 방에서 같은 형상을 보았다고 진술한 사람은 30명을 넘는다. 영국의 한 총리, 한 망명 여왕, 두 명의 미국 영부인, 한 대통령의 딸과 사위, 그리고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백악관의 평범한 직원들이 모두 같은 모습을 묘사했다. 어느 누구도 결정적인 사진이나 영상을 남기지 못했지만, 그 누구도 자신이 본 모습이 환영이었다고 인정하지도 않았다. 만약 어느 날 당신이 그 방에 손님으로 묵게 된다면, 새벽 한 시의 부드러운 노크에 당신은 문을 열 것인가. 그 답은 오직 당신만이 알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 답은, 문을 연 다음 자신이 본 것을 평생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또 한 사람의 침묵으로 남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