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국 유일의 마녀 사망 사건
1817년 미국 테네시주 로버트슨 카운티의 한 농가에 보이지 않는 한 존재가 4년 동안 머물렀다. 그것은 가족 9명 중 단 한 사람, 가장인 존 벨만을 표적으로 삼았으며, 1820년 그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 이 사건은 미국 역사상 보이지 않는 존재의 “행위”가 가장의 사망에 직접적으로 연결된 유일한 공식 기록 사례로 남아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사건이 시작되고 약 2년 후, 후일 미국 7대 대통령이 되는 앤드루 잭슨이 직접 조사단을 이끌고 그 농가를 방문했다는 점이다. 2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이 사건은 미국 초자연 사건 중 가장 깊이 연구된 사례로 꼽힌다.

2. 1817년 가을, 옥수수밭의 그 짐승
사건의 시작은 1817년 가을이었다. 농장주 존 벨은 그날 자신의 농장 옥수수밭을 거닐다 이상한 짐승 한 마리를 발견했다. 그는 그것을 “토끼와 개의 중간 형태”로 묘사했고, 즉시 가지고 있던 엽총을 발사했다. 그러나 짐승은 총알에 맞은 듯한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날 밤부터 벨 가문의 농가 외벽에서는 누군가 손가락 마디로 가볍게 두드리는 듯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밤중에만 들렸고, 가족들은 곧 익숙해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소리는 매일 밤 더 커졌고, 며칠 후에는 가족 침실의 천장과 마룻바닥까지 두드리기 시작했다.
3. 베티 벨을 표적으로 한 학대
이상 현상이 시작된 지 약 1년이 지난 1818년 말부터 그 존재는 가장 어린 딸 베티 벨을 표적으로 삼기 시작했다. 베티는 당시 약 12세였다. 보이지 않는 존재는 베티의 머리카락을 강하게 잡아당기거나, 그녀의 뺨을 갑자기 때리거나, 한밤중에 그녀의 침대 시트를 끌어내렸다. 이러한 학대는 가족 외 방문객들 앞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났으며, 다수의 이웃이 베티의 뺨에 갑자기 손바닥 자국이 떠오르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베티의 약혼자였던 조슈아 가드너 역시 한 차례 농가를 방문했다가 베티를 보호하려다 자신의 모자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멀리 날아가는 일을 경험했다.

4. 1819년 봄, 음성의 시작
1819년 봄, 이 존재는 처음으로 인간의 음성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속삭임 정도였으나 점점 또렷한 여성 음성으로 자리 잡았다. 가족이 “누구냐”고 물으면 그것은 매번 다른 답을 했다. 어느 날은 “나는 한때 살아 있었던 사람”이라 답했고, 또 어느 날은 “나는 인디언의 무덤에서 깨어난 영혼”이라 답했다. 가장 흔하게는 “나는 케이트 배츠”라 답했다. 케이트 배츠는 벨 가문의 이웃이었던 한 노인 여성으로, 존 벨과 토지 거래로 갈등을 겪었던 인물이었다. 흥미롭게도 같은 존재가 다음 날에는 “나는 케이트 배츠가 아니다”라고도 말했다. 이 모순적 진술이 200년이 지난 지금도 학자들 사이에서 해석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5. 잭슨 대통령의 1819년 방문
사건의 소문이 미국 동부까지 퍼지자, 당시 군 영웅이자 후일 7대 대통령이 되는 앤드루 잭슨은 직접 그 농가를 방문하기로 결심했다. 1819년 늦여름, 그는 약 6명의 동료와 함께 마차를 타고 테네시의 벨 농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농장 정문 약 800미터 앞에서 마차의 모든 바퀴가 동시에 멈추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말들도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았다. 잭슨이 “우리가 들었던 그 마녀인가”라고 큰 소리로 외치자, 들판 어딘가에서 한 여성의 음성이 분명하게 답했다. “맞다. 오늘 밤 너희를 다시 보자.” 그 순간 마차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6. 그 하룻밤과 잭슨의 진술
잭슨 일행은 그날 밤 벨 가문 농가에 머물렀다. 일행 중 한 명은 자신을 “마녀 사냥꾼”이라 칭하며 그 존재를 도발했다. 그가 잠자리에 들자마자 보이지 않는 손이 그의 침대 시트를 끌어내렸고,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핀과 바늘이 그의 몸 곳곳에 박혔다. 그는 새벽이 되기 전에 농가를 도망쳐 나왔다. 잭슨 본인은 그날 밤 거실에서 그 존재의 음성을 직접 들었다. 다음 날 일행과 함께 농장을 떠나면서 그가 동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후일 전해진다. “이 농가에서 보낸 하룻밤보다 차라리 영국군과 다시 싸우는 편이 낫겠다.” 잭슨은 평생 그 경험에 대해 공식 자리에서 자세히 진술하지 않았다.

7. 1820년 12월 20일 새벽
잭슨의 방문 후에도 사건은 계속되었고, 존 벨의 건강은 점차 악화되었다. 그는 안면 경련과 만성 통증에 시달렸으며, 식사를 거의 하지 못하는 상태가 이어졌다. 1820년 12월 20일 새벽, 가족이 그의 침실에 들어갔을 때 그는 깊은 혼수 상태였다. 침대 옆 작은 탁자 위에는 가족 누구도 본 적 없는 작은 검은 약병이 놓여 있었다. 마침 농가에 머물던 한 의사가 그 약병의 내용물을 마당의 동물에게 시험했고, 동물은 즉시 사망했다. 그 순간 가족 모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들려오는 큰 웃음소리를 들었다. “내가 그에게 충분히 마시게 했다.” 존 벨은 그날 오전 사망했다.

8. 1821년, 사라진 그 존재
존 벨의 사망 후, 그 존재는 한동안 농가에 머무르며 가족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내 일은 끝났다. 7년 후 다시 돌아오겠다.” 그리고 1821년 봄부터 그 존재의 활동은 점차 잠잠해졌다. 두드리는 소리는 줄었고, 음성은 멈추었다. 가족은 점차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실제로 1828년경 짧은 재출현이 있었다는 보고가 남아 있지만, 그 이후로는 공식 기록이 없다. 베티 벨은 그 후 약혼을 파혼하고 평생 결혼하지 않았다. 사건이 끝난 후에도 그녀는 자주 외부 자극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으며, 평생 그 농가에는 다시 발을 들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9. 1846년 가족 일지와 1894년 책
사건의 가장 상세한 기록은 존 벨의 둘째 아들 리처드 윌리엄스 벨이 1846년경 정리해 둔 가족 일지였다. 이 일지는 한 가족의 4년 동안의 경험을 시간 순으로 자세히 기록한 자료였으며, 약 48년 동안 가족 외에는 공개되지 않았다. 1894년 작가 마틴 V. 잉그램은 이 일지를 토대로 “벨 마녀의 권위 있는 역사”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책은 출간 즉시 미국 전역에서 화제가 되었고, 이후 수십 권의 후속 연구가 이어졌다. 1859년 출간된 또 다른 책은 베티 벨 본인이 노년에 자신의 회고를 정리한 자료를 일부 포함했다.

10. 200년의 학문적 해석
200년 동안 이 사건에 대해 다양한 학문적 해석이 제시되었다. 일부 심리학자들은 베티 벨이 12세 무렵 청소년기 정신적 동요를 겪었고, 그 가족이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외부의 보이지 않는 존재로 해석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케이트 배츠와 존 벨 사이의 토지 분쟁이 한 동네의 집단적 적대감을 만들었고, 그것이 어린 베티에게 집중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일부 초자연 연구자들은 그 농가가 위치한 지점이 미국 원주민의 매장지 인근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한다. 잭슨의 방문에 대해서는 일부 학자가 단순한 후대의 미화일 가능성을 지적하지만, 잭슨 본인의 일기에는 그 시기 테네시 방문이 실제로 기록되어 있다.

11. 오늘날의 벨 농장
오늘날 그 농장이 있던 자리는 테네시주 애덤스라는 작은 마을 인근에 위치하며, 일부 구역은 “벨 위치 동굴”이라는 이름의 관광지로 운영되고 있다. 매년 약 수만 명의 방문객이 그곳을 찾으며, 일부는 그 동굴 안에서 알 수 없는 음성을 들었다고 진술한다. 그러나 이러한 진술의 다수는 관광 마케팅의 일환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있다. 진짜 농가 건물은 19세기 후반에 철거되었고, 현재는 작은 비석만이 그 자리를 표시하고 있다. 한 가족이 4년 동안 보이지 않는 존재와 함께 살았다는 진술은 오늘날 한 마을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다. 사건의 진위와 별개로, 벨 마녀는 이미 미국 문화의 한 부분이 되었다.

12. 답이 없는 4년
벨 마녀 사건은 200년이 지난 지금도 공식적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베티 벨의 청소년기 동요였을까. 케이트 배츠를 둘러싼 동네 적대감의 산물이었을까. 원주민 매장지에서 깨어난 무엇인가였을까. 아니면 그 모든 가설로도 설명되지 않는 어떤 존재가 정말로 4년 동안 한 농가에 머물렀던 것일까. 잭슨 대통령은 평생 그날의 일을 자세히 진술하지 않았다. 베티 벨은 평생 결혼하지 않았다. 존 벨은 검은 약병 옆에서 죽었다. 이 세 가지 사실만으로는 그 4년 동안 그 농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사건의 가장 큰 미스터리는 그것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발생을 진술하는 사람들이 모두 다른 사회 계층, 다른 시기, 다른 동기에도 불구하고 같은 이야기를 했다는 점에 있다.
13. 마치며: 농가의 흙 속에 묻힌 답
오션 애비뉴의 그 농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베티 벨은 1888년경 사망했다. 잭슨 대통령은 1845년 사망했다. 마틴 V. 잉그램의 1894년 책은 오늘날 미국 의회 도서관에 한 권이 보존되어 있다. 그 책의 마지막 장에는 잉그램 본인이 손으로 적어 둔 한 줄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 모든 진술을 전부 믿기는 어렵지만, 한 가족이 4년간 동일한 거짓말을 일관되게 진술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2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한 문장은 벨 마녀 사건의 핵심을 가장 정직하게 표현한 진술로 남아 있다. 답은 농가의 흙 속에 묻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만은 묻히지 않았다. 한 가족이 4년간 함께 살았던 그 무엇인가는, 오늘날의 우리가 가진 어떤 단어로도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